아밀로이드 베타(amyloid beta) 단백질은 대표적인 노인성 치매 질환인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으로 지목되어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고 뭉쳐져 만든 덩어리(플라크)가 뇌에 염증을 일으키고, 뇌세포를 죽여 알츠하이머병과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학계에서는 이러한 '아밀로이드 이론'보다는 '감염설' 관련 연구들이 좀 더 주목받는듯하다.
알츠하이머병 감염설이란, 외부 바이러스나 미생물에 의한 감염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는 가설이다. 최근 미국 식품의약청(food and drug administration, fda)이 승인한 첫 번째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레카네맙(lecanemab) 등 아밀로이드 이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의 효과가 기대 이하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감염설에 조금 더 힘이 실리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이 알츠하이머병 유발?지난 19일 미국 컬럼비아 대학교(columbia university) 다반제르 데바난드(davangere devanand) 교수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the 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약 35년 동안 헤르페스 바이러스와 알츠하이머병 사이의 연관성을 찾고 있다"라고 말하며, "바이러스와 알츠하이머병 사이의 연관성을 증명하는 간접적인 증거들이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실제로 2022년 2월 미국 터프츠 대학교(tufts university)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university of oxford)가 참여한 합동 연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알츠하이머병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했다. 전 세계 인구의 90%가 감염된 것으로 알려진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수두와 대상포진을 유발하는 바이러스다. 전염력이 매우 높으며 소아기에 감염되면 수두가 발생하고, 이후 신경 주위에 무증상으로 남아있다가 감기 등으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질 때 대상포진으로 다시 나타난다. 연구를 살펴보면,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는 신경과 뇌에 숨어있는 단순포진 바이러스 1형(hsv-1)을 활성화하고 연쇄반응을 일으켜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비정상 단백질을 만든다. hsv-1은 가장 흔한 헤르페스 바이러스로 인체의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구내염 등을 일으키며, 알츠하이머병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 연구진은 "연구 결과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자체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이 없다"라고 말하며, "하지만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hsv-1의 행동을 촉발하면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 등을 만들어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한다"라고 전했다.연구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옥스퍼드 대학교 루스 이츠하키(ruth itzhaki) 교수는 "평생에 걸쳐 반복되는 헤르페스 바이러스(hsv-1)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감염이 결국 뇌 기능 손상과 함께 알츠하이머병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루스 이츠하키 교수는 과거에도 헤르페스 바이러스가 알츠하이머병 발병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2011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the university of manchester)에서 재직하던 루스 이츠하키 교수는 당시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plos one)'을 통해, hsv-1은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주요 위험인자이며 헤르페스 바이러스 치료제가 알츠하이머병의 진행 속도를 늦출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연구를 발표했다. 2019년 미국 제약회사인 코텍자임(cortexyme) 연구진도 잇몸병을 일으키는 세균인 포르피로모나스 진지발리스(porphyromonas gingivalis)가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위험 요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잇몸병을 일으키는 이 세균이 구강 내 혈관을 통해 뇌로 이동해 진지페인스(gingipains)라는 독성효소를 분비하고 뇌세포를 사멸시키며,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과 타우 단백질이 뇌에 축적되게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코텍자임 연구진은 이 연구 결과를 근거로 알츠하이머병 신약을 개발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미국 식품의약청에 의해서 2022년을 기준으로 모든 임상시험이 보류된 상태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오히려 뇌 보호?감염설 학자들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주요 원인이 아니라, 외부 감염원으로부터 뇌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 신시내티 대학교(university of cincinnati) 알베르토 j. 에스페이(alberto j. espay) 교수는 2022년 국제학술지 '알츠하이머병(journal of alzheimer s disease)'을 통해 뇌 안의 정상적인 아밀로이드 베타 수치가 낮으면 인지기능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증가한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에스페이 교수는 "뇌 안 가용성 아밀로이드 베티 수치가 270 pg/ml 이상인 사람은 아밀로이드 베타 덩어리의 양과 상관없이 인지기능에 문제가 없었다"라고 말하며, "연구 결과를 고려하면 알츠하이머병 같은 퇴행성 뇌 질환은 아밀로이드 베타가 사라지면서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욱 논리적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