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은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대표적인 단어이다. '마음의 감기'라는 이명에서 볼 수 있듯이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정신질환이자, 가장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정신 질환일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매년 oecd 주요 국가의 우울증 지수를 조사하고 발표할 때마다 대한민국은 항상 최상위권에 위치한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더 우울한 올해도 우울증 지수 36.8%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우울증이라는 질환에 관대하다. 한 자료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을 겪고 있는 환자의 약 75%가 우울증에도 불구하고 전문적인 치료나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강해진다.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유교권 국가’의 특성 덕분인지 우울증이 가장 심한 세대 중 하나인 40~50대 중년의 남녀들은 우울증이 와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은퇴 시기와 맞물려 중년의 사람들은 과거 사춘기를 겪었던 청소년 시절처럼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만들어 놓은 자신의 정체성과 현실 사이에서 강한 심리적 혼란을 겪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갱년기가 찾아와 호르몬 분비량에도 변화를 겪는다. 제2의 사춘기를 겪고 있는 중년을 더욱 힘들게 하는 호르몬 변화, 중년의 우울증과 어떠한 연관성이 있을까? 호르몬과 우울증의 상관관계에 대해 하이닥 정신건강의학과 상담의사 전한솔 원장(푸른솔정신건강의학과의원)이 자세히 설명했다.
여성호르몬 분비량과 우울증전한솔 원장: 일반적으로 여성의 우울증 유병률이 남성의 유병률에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그 차이로는 여성의 호르몬과 많은 관련을 짓곤 합니다. 특히나 갱년기의 경우에는 우울증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갱년기가 찾아오면 여성의 월경을 예측하기가 어려워지고, 배란이 점점 더 드물어집니다. 이 경우 여성의 대표적인 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e2, estradiol)의 체내 최고 농도가 정상적인 가임기 때에 비해 훨씬 높아지게 되며 변동폭이 커지게 됩니다. 이러한 에스트라디올 수치의 심한 변동이 더욱 심각한 우울증 증상을 야기한다는 최근의 논문 발표가 있었습니다.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제니퍼 리 고든(jennifer lee gordon) 부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이러한 에스트라디올 수치의 큰 변화가 정신-사회적인 스트레스의 민감성을 증가시킨다는 가설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와 그에 따른 체내 변화 및, 스트레스 민감성 향상이 갱년기 우울증의 원인으로 최근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남성호르몬 분비량과 우울증전한솔 원장: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은 체내에서 하는 일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단순히 2차 성징이나 성 기능 발달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이러한 호르몬과 우울증의 상관관계 역시도 밝혀지고 있습니다. 50세가 넘어가면 남성의 갱년기가 시작되는데, 이때 남성의 체내 테스토스테론의 수치가 정상치 아래로 떨어지게 되고, 이로 인해 우울증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실제로 우울증에 걸린 남성들에게 테스토스테론을 주입하는 호르몬 대체 요법을 시행하였을 때 즉각적이며 극적인 수준의 반응을 보였고, 이러한 호르몬 대체 요법이 끝나자마자 우울증이 재발하는 실험 결과가 이를 방증합니다. 따라서 일부 병원에서는 중년 남성에게 우울증 치료를 위해 남성호르몬을 주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한솔 원장: 단순히 위에서 언급한 생애 주기적 변화 외에도 다양한 정신 사회학적 위기를 답습하는 현대인에게 우울증은 매우 흔하면서도 만성적인 질환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1위를 고수하고 있고, 2021년 발표한 oecd 자료에서도 우리나라 국민들은 약 36%가 우울감을 호소했으며, 이 역시 oecd 전체 1위였습니다. 서양인에 비해 우리 국민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들여다보는데 익숙하지 않고, 본인이 우울증이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이런 일을 겪는 사람이 많나요? 이런 일 가지고 정신과를 찾아도 되는 건가요?”입니다. 이러한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문턱이 예전보다 많이 낮아진 듯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본인의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나아가는데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만나 전문적인 상담과 진단, 치료를 받았으면면 하는 바람입니다.
도움말 = 하이닥 상담의사 전한솔 원장(푸른솔정신건강의학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